1. 노스탤지어(nostalgia)를 떠올리다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미스터리, 스릴러물입니다. 손에 땀을 쥐는 무서운 장면들이 꽤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떠올리면 무척이나 따뜻한 마을 사람들의 인심과 고향의 포근함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이웃을 내 가족처럼 보듬어 주고, 아껴주고, 지켜주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들이 가치 있게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지금 우리가 사는 삭막한 현실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엄마의 품속처럼 걱정과 근심 없이 편안하고 포근한 상태를 그리워할 것입니다. <선재의 노래>는 복잡한 우리 마음속의 노스탤지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스탤지어(nostalgia)란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합니다. <선재의 노래>는 엄마처럼 따뜻한 할머니에 대한 사랑과 감사, 그리움이 녹아있는 소설입니다. 짧은 분량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으면서 내 마음속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문득문득 샘솟았습니다. 살고 있는 장소인 고향의 의미가 아닌 과거의 아름다웠던 수많은 추억이 바로 내 안에 있는 그리움입니다. 그리움이란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청소년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라고 하면 가족들과 단란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 사진처럼 펼쳐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과 다른 과거의 추억은 나에게 그리움이란 감정으로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공선옥의 <선재의 노래>에서 주인공 선재는 그리움이란 감정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말입니다.
2. 선재의 이야기가 주는 감동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조손가정의 선재는 할머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장터에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재는 할머니가 장터에서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을 듣습니다. 할머니와 함께했던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기보다는 할머니에게 잘못했던 일들만 떠오릅니다. 할머니를 따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이 마치 자기 잘못처럼 느껴졌습니다. 부모가 없는 선재를 맡아서 키워주신 할머니, 아프신 몸을 이끌며 생계를 이어가신 할머니, 그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에 선재는 보답조차 못했습니다. 후회로 가득한 순간에도 선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인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세상에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은 할머니와의 삶들이 너무나 일찍 끝나버린 것입니다. 영원할 것 같이 믿었던 순간이 결국 끝나게 된 날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믿을 수도 없고 준비도 안 되었던 갑작스러운 이별의 경험은 선재를 방황하게 만듭니다. 이 소설에는 할머니를 추억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선재의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할머니와의 추억을 통해 선재는 깨닫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던 자기를 발견합니다.
결국 선재는 할머니와 이별을 순리대로 받아들입니다. 할머니에게 사랑의 따뜻한 감정을 고스란히 받았기 때문에 절망적인 순간에서도 선재는 이별의 상황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 소설에서는 힘든 상황을 스스로 극복해 가는 선재의 성장 과정이 따뜻한 문체로 그려져 있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열세 살 청소년의 모습이 아닌 사랑으로 단단하게 성장하는 선재의 모습이 독자에게 잔잔하게 다가옵니다. 가까운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선재의 아픈 마음에 공감하고 그가 아픔을 극복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태도를 응원하게 됩니다.
3. 따뜻한 이웃은 삶의 힘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홀로 남은 선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유일한 보호자였던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선재는 불행의 나날을 겪어야 하지 않을까요?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의 핵심은 바로 선재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에게 있습니다. 한 사람을 보살피려면 경제적, 정신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소설을 읽으며 홀로 된 선재의 모습을 보며 ‘큰일 났구나!’ 하는 순간, 주변의 많은 이들이 선재를 서로서로 입양하려고 합니다. 마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마을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가족이기주의란 말이 나올 정도로 현실에서는 자기 가족만 챙기려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현실이라면 선재의 상황을 동정하기는 쉽지만, 선재를 선뜻 입양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장, 고물 장수, 스님, 상필이네 할머니, 선생님 등 동네 사람들은 선재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 하지 않습니다. 정신적, 경제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선재부터 챙기려는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이 유독 돋보이는 소설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따뜻한 사회야말로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는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4. 홀로 남은 청소년에 대해
선재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보호자가 없는 아동들에 대한 우리나라 현실이 정말로 궁금해졌습니다. 부모가 없거나 양육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환경의 아이들은 어떻게 보호받을까요? 그들은 영아원, 보육원과 같은 아동양육시설과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 등의 보호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보호하는 연령은 제한이 되어 있습니다. 아동복지법 등에 따라 18세 이후로는 보호가 종료되어 홀로서기에 나서고 자립을 준비해야 합니다. 바로 자립 준비 청년입니다. 18세는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나이입니다. 고등학생은 청소년이기 때문에 어른의 눈으로 볼 때도 독립과 자립을 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호 아동들이 18세 이후가 되면 주변 환경이 열악해도 법에 따라 자립 준비 청년이 되는 것입니다. 자립 준비 청년은 매년 약 2,500명 정도가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의 연령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정부는 보호가 종료된 이들에게 5년간 자립정착금과 수당, 주거·의료비 지원, 취업 지원, 정신건강 지원 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고물가 시대에서 이들의 자립은 쉽지 않습니다.
공선옥 작가는 <선재의 노래>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관심을 갖지 않았던 조손가정과 같이 소외된 이들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선재와 같이 홀로서기를 하는 청소년에게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보호자가 없는 청소년과 자립 준비 청년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소외된 이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처럼 우리 주변에 따뜻한 관심을 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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