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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도서 추천

청소년 도서 추천┃ 유은실『순례주택』

by 넓은길 2024.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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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내 표지

1.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집

‘순례주택’의 건물주 김순례 씨의 원래 이름은 순하고 예의 바르다는 뜻의 순례(順禮)입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순례자(巡禮者)의 순례(巡禮)로 이름을 개명합니다. 순례는 ‘종교의 발생지, 성인의 무덤이나 거주지와 같이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방문하여 참배한다’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순례 씨가 자신의 이름을 개명한 이유는 나머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라는 마음으로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을 살기 위한 방법으로 감사보다는 요구를 많이 합니다.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남을 짓밟는 일도 서슴지 않고, 성적 향상을 위해 친구도 경쟁자로 생각해 버리며 더 잘 살기 위해 요구하고 상처 주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순례주택’의 순례 씨의 삶은 편안하고 따뜻한 여유를 제공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아쉽고 후회되는 점이 없을 순 없겠지만, 순례 씨는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방식 대신 살아온 삶과 이웃들에게 감사하며 지냅니다. 부모에게 방치된 아이 ‘오수림’에게도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줍니다. 이 소설은 ‘순례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의 삶과 세입자들의 알콩달콩한 이야기가 매우 유머러스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칫 우울할 수 있는 가정의 문제도 유쾌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들로 머릿속이 복잡할 때, ‘순례주택’을 읽다 보면 꽁했던 마음이 풀리고, 세상일이 별거 아닌 것처럼 가벼워집니다.
 

2. ‘순례주택’에서 자란 ‘오수림’의 이야기

중학교 3학년 ‘오수림’은 4층짜리 건물 ‘순례주택’에서 7살까지 살았습니다. 이 주택은 1층에 미용실과 주차장이 있고 2, 3, 4층 1, 2호 라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건물 옥상엔 입주민을 위한 공용공간인 옥탑방이 있습니다. 402호에 사는 건물주 75세 순례 씨는 서른다섯 살에 이혼하고 혼자 아들을 키우기 위해 목욕탕에서 세신사로 일합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처럼 때를 밀며 모은 돈으로 주택을 구입합니다. 마침 근처에 지하철역이 생기면서 집값이 오르고 주택 마당으로 일반도로가 확장되어 보상금까지 받게 됩니다. 순례 씨는 이 돈으로 ‘순례주택’을 짓고 임대를 합니다. 그러나 건물 임대로 돈을 벌 생각이 없었던 그녀는 주변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보증금과 월세를 받습니다.
 
수림이의 엄마는 전업주부고 아빠는 대학교 시간강사입니다. 돈이 없었던 엄마와 아빠는 외할아버지집에 얹혀살고, 부족한 생활비는 다른 가족들로부터 받아 생계를 유지합니다. 외할아버지는 수림이네 부부와 함께 지내기가 불편해서 자기 집에서 나와 ‘순례주택’에서 월세를 내고 삽니다. 아빠는 전임교수가 될 때까지만 도와달라고 가족들에게 손을 벌리지만 15년째 교수임용에 탈락합니다. 엄마는 두 딸을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에서 산후우울증 때문에 첫째는 시댁으로, 둘째는 친정으로 보내 키웁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가 둘째인 수림이를 데리고 ‘순례주택’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순례 씨는 수림이를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키웁니다. 가족과 떨어져 산 수림이는 엄마, 아빠, 언니 미림이를 1군들이라 지칭합니다. 1군들은 어른스럽지 못하고 부끄러운 것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명문대 출신의 부모님은 차별적 시선을 지니고 있습니다. 빌라에 사는 아이들을 가난하다고 무시합니다. 둘째 딸 수림이를 7년이나 키워준 순례 씨에게도 ‘때밀이 아줌마’, ‘동거녀’라고 부르며 고맙다는 말도 안 하는 무례한 사람들입니다. 부부는 첫째 딸 미림에게는 학원비와 과외비를 대주며 예뻐하고 성적이 중간인 수림이에겐 특별하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수림이는 몰상식한 가족들과 함께 지내면서 청소년기를 우울하게 보냈을까요?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해 슬펐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수림이에게는 순례 씨가 있습니다. 올곧은 가치관으로 수림이를 건강하게 키워준 순례 씨 덕분에 수림이는 긍정적이며 생활력이 있는 멋진 소녀로 성장했습니다.

3.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

어느 날 수림이의 외할아지가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시고 사기꾼에게 속아 모든 재산을 잃습니다. 결혼 후에도 부모와 형제의 도움으로 살아온 1군들은 결국 살던 아파트에서 쫓겨납니다. 보증금도 없어 자동차와 돌반지를 팔아 생활해야 하는 상황에도, 수림이의 부모는 자존심만 세서 아르바이트를 하자는 수림이의 말에 분노합니다. 생활력이 없고 대책도 없는 1군들입니다.
살 곳이 없어진 1군들을 위해 수림이는 순례 씨에게 부탁합니다. ‘순례주택’ 세입자들은 1군들에게 ‘순례' 씨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순례주택을 유산으로 물려줄지 모른다’는 말을 합니다. 1군들은 그 재산이 탐나서 순례 씨에게 잘하기 시작합니다. ‘순례주택’에 사는 이웃들의 따뜻한 태도와 관심으로 1군들은 서서히 변해 갑니다. 그 중간에는 청소년이지만 누구보다 어른스럽고 대견한 수림이와 순례 씨가 있습니다. 수림이의 엄마는 43살의 나이로 처음 김밥집에서 일을 해 일당 7만 원을 자기 손으로 벌어봅니다. 서서히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며 변해가는 수림이네 가족. 이 작품 속에서 이기적이었던 1군들은 따뜻한 이웃들 덕분에 변해갑니다. 그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가난하고, 예의가 없다는 이유로 내치기보다 상대방의 단점조차 감싸주는 이웃들의 넓은 마음. 비판적인 시선으로 수림이의 부모를 바라보았던 우리의 태도를 반성하게 합니다.
 

4. 지친 몸과 마음을 녹이다

유은실 작가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린 순례자들에게 순례주택이 우리의 지친 몸과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알베르게' 같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끝없이 걷는 고행의 길, 상상만 해도 지치고 힘듭니다. 우리의 지나온 삶들은 어쩌면 고행처럼 어려운 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나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소설, 이 소설의 따뜻함은 일상에 바쁜 우리에게 밝은 햇살처럼 느껴집니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순례 씨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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