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간을 파는 상점>의 주인 크로노스
김선영의 <시간을 파는 상점>은 ‘제1회 자음과 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입니다. 제목부터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시간은 추상적 가치인데, 실재하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만듭니다. 또한 ‘만약 시간을 살 수 있다면, 어떤 시간을 살까?’라는 질문도 던지게 만듭니다. ‘과거의 추억을 살까?’ 아니면 ‘후회했던 일을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을 살까?’ 아니면 ‘미래에 벌어질 일을 미리 알아 일확천금을 얻을까?’ 등등 놓쳤던 기회를 다시 찾고 싶다는 다양한 생각까지 떠오르게 만드는 제목입니다.
작가는 ‘크로노스’라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으로부터 참신한 소재를 찾아 주인공 ‘온조’의 사업 아이템으로 만듭니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농경과 계절의 신입니다. 자기 아들에게 지위를 뺏긴다는 예언을 믿고, 자식들이 태어나는 대로 차례로 잡아먹다가 제우스에게 쫓겨나는 악명 높은 신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크로노스’는 신과 인간 모두를 풍요롭게 살게 만드는 황금시대의 자애로운 통치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즉 시간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농경과 계절의 신입니다. 주인공 ‘온조’는 시간의 경계를 나누고 관장하는 ‘크로노스’야말로 이 시대에 딱 맞는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을 분초 단위로 조각내어 철저하게 계산해 시간을 운용하면, 이것은 생산적인 결과물로 연결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온조는 다른 사람들의 부탁을 대신 들어주는 심부름센터인 <시간을 파는 상점>을 인터넷에 열고 그 주인을 바로 ‘크로노스’로 이름 지었습니다.
2. 온조의 특별한 이야기
고등학교 2학년생인 주인공인 ‘온조’는 엄마와 단둘이 살아갑니다. 소방대원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온조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온조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시간이 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인터넷 가게 ‘시간을 파는 상점’을 열게 됩니다. 이 상점에서 온조는 ‘크로노스’란 이름으로 심부름을 해준다거나 고민을 해결해 주는 일을 합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시간이 소중한 만큼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을 대신 해주는 것입니다. 온조는 학교에서 하나의 일을 의뢰받습니다. 분실된 전자기기 PMP를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내 곁에’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의뢰인은 우연히 친구의 PMP를 가져가는 친구를 목격했고 물건을 찾아 돌려주려고 합니다. ‘내 곁에’ 의뢰인은 ‘시간을 파는 상점’에 이 일을 의뢰하게 됩니다. 이동수업이 가능했기 때문에, 다른 반 사물함에 PMP를 되돌려 놓는 어려운 일을 온조는 잘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물건이 제자리에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누구인지 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온조는 이전의 안 좋은 사건을 떠올리며 나쁜 일은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아이들을 설득하고 선생님도 온조의 의견을 받아들여 누구인지 찾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온조는 의뢰를 깔끔하게 해결했습니다. 의뢰인인 누구인지 모른다는 익명성과 아무도 몰래 의뢰를 수행해야 한다는 미션은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을 보는 듯한 긴장감을 연출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온조만의 방식에 독자들은 주목하고 무사히 일을 마치기를 바라면서도 ‘내 곁에’라는 의뢰인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3. 엄마의 인생, 아빠에 대한 추억
온조에게는 소방관이셨던 아빠에 대한 애틋한 추억이 남겨져 있습니다. 도마뱀 꼬리 같은 기억과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죠. 아빠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온조에게 아빠는 돌아가신 분이 아닌 마음속에 살아계신 분입니다. 온조의 엄마에게도 마찬가집니다. 그렇지만 온조의 엄마가 아빠에 대한 추억만으로 삶을 살아야 할까요? 이 소설에서는 온조의 엄마도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온조는 어느 날 엄마의 남자 친구에 대해 듣습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온조는 아빠를 잊어버렸다는 원망보다 자신을 버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혼란스러워합니다. 온조의 친구 ‘난주’는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하고, 온조는 결국 자연스럽게 엄마의 남자 친구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지만 중요한 사람이나 사건에 관해서는 누구나 도마뱀 꼬리 같은 기억과 흔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기억과 추억의 흔적들을 어떻게 나에게 적용할지는 자신만의 몫입니다. 온조는 엄마의 마음을 존중하며 이 경험을 통해 자신도 성장합니다.
4. 그 아이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난주’는 7반 정이현이라는 남학생을 좋아합니다. 온조는 정이현과 절친인 난주를 연결해 주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셋은 친구가 됩니다.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한 어느 날, ‘내 곁에’님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온조’는 이현이 ‘내 곁에’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또한 PMP를 가져간 후 괴로워하는 이현의 친구에 대해 알게 되고 그 아이를 만나러 갑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바닷가에서 그들은 만납니다. 작가가 묘사한 바닷가 풍경과 바람의 길은 이 소설에서 청소년들의 갈등과 고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어려움이 바람의 길처럼 우리의 얼굴과 온몸을 얼얼하게 만듭니다. 이현의 친구 역시 아주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이현은 이 친구를 만나 꽉 껴안아 줍니다. 그리고 친구와 악수할 때, 고맙다는 말을 듣습니다. 위태로웠던 순간을 ‘이현’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친구는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냈습니다. 온조의 <시간을 파는 상점>은 단순히 누군가의 시간을 대신하는 심부름센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구하게 됩니다. ‘미래의 시간’을 선사함으로써 보다 의미 있는 상점이 된 것입니다. 온조의 인생도 이 상점처럼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작가의 마지막 말처럼 ‘우리가 맞이하는 시간은 늘 처음’입니다.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처음 맞이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새로운 의미 부여가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시간을 사고 싶으신가요? 늘 처음 맞이하는 시간이 여러분에게 펼쳐져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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