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래의 보육원, NC 센터
이희영의 <페인트>는 ‘제1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입니다. 아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소설을 읽게 만듭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정부 기관 ‘NC 센터’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가디(보호자)의 관찰 아래 3차례의 부모 면접을 거친 후 부모를 선택하면 아이는 한 가족의 일원이 됩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버거운 사람들이 아이를 버리고, 이 아이들은 국가의 보호 아래 아주 잘 양육되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NC 센터’에서는 건강 관리는 물론 부모로부터 상처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가디들은 센터를 나가야 하는 스무 살까지 아이에게 맞는 부모를 만나게 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 책은 ‘NC센터’에서 열일곱 살까지 성장하면서도 아직 부모를 선택하지 못한 ‘제누 301’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이 선택하는 부모는 어떤 부모일지 궁금합니다. 또 이 책에는 저출산 문제, 입양 문제, 가정 내의 아동 학대, 부모의 잘못된 가치관으로 인한 잘못된 양육 등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족의 문제들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작가 이희영은 독자들에게 가족 내의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듭니다.
2. 내 인생을 페인트로 칠하다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의 영어 발음의 주요 글자를 따면 <페인트>입니다. 제목 <페인트>는 자신의 미래를 원하는 색깔로 물들이고 싶은 아이들의 희망을 담은 말이기도 합니다. ‘페인트를 칠한다’는 의미로 다양한 색이 섞여 전보다 밝게 빛날 수도 있고 탁하게 변할 수도 있다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3차례의 면접을 거쳐 자신과 함께 살 미래의 부모를 선택한다는 설정은 마치 아이가 부모보다 선택의 우위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부모와의 관계가 부정적인 아이들은 부모를 바꾸고 싶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꿈을 자녀에게 투영시켜 스파르타식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들도 있고, 보살필 순간에 방임하는 부모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제누 301’은 상대의 마음을 파악하는 안목이 있어서 부모 면접에서 거절을 많이 합니다. 양육비로 받는 정부의 보조금 때문에 센터를 찾아오는 사람들에 대한 냉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센터에 있는 동생 ‘아키’에게도 프리 포스터(예비 부모) 사이에는 가장 중요한 사랑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키'는 사랑도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성숙한 말을 건넵니다. 인간 관계가 일방적인 것이 아닌 서로의 관계 맺음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NC 센터’의 아이들은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부모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랑도 만들어 가는 가치라고 말하는 ‘아키’, 그가 원하는 페인트는 따뜻한 색깔의 밝은 페인트입니다.
3. 아이들을 보호하는 센터장 ‘박’의 이야기
‘제누 301’을 항상 걱정하는 가디는 바로 센터장 ‘박’입니다. ‘제누 301’이 의지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완벽하며 원리, 원칙주의자인 ‘박’은 자신보다 센터의 아이들이 최우선입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주말에도 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부모 면접을 할 때도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철저하게 조사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날 ‘제누 301’은 ‘박’에 대해 알게 됩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박’에게 상처를 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부모를 선택할 수 없었던 ‘박’은 버려진 아이보다 더 크게 괴로워하며 자신의 마음을 외면한 채 살아왔습니다.
후배 가디 ‘최’는 말기 암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박’에게 아버지를 찾아가라고 조언합니다.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와 다른 ‘박’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이 책에서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 가정 내의 아픔에 대해 언급합니다. ‘박’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를 마음속 깊이 꼭꼭 숨겨두고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합니다.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지고 아버지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센터의 아이들에게 더 마음을 씁니다.
이런 경험은 한 사람이 온전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합니다.
흔히 상처와 아픔은 극복하면서 성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믿었던 가족으로부터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조차 부정하게 만드는 엄청난 고통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올바른 부모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좋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듯이 말입니다.
4. ‘제누 301’의 최종 선택
‘제누 301’에도 부모 면접이 진행됩니다. 미술을 하고, 글을 쓰는 젊은 부부가 ‘제누 301’와 한 가족이 되고 싶다고 신청한 것입니다. 이들은 돈과 글의 소재를 찾기 위해 부모 면접을 신청했다고 말합니다. 거짓된 모습과 꾸며진 모습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던 ‘제누 301’은 그들의 솔직한 모습과 자유로움이 궁금해 3차례 걸쳐 부모 면접을 신청합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 ‘하나’의 이야기는 또 다른 부모의 자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녀의 엄마는 ‘하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해줍니다. 애지중지 아이를 키우며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엄마의 기대와 다르게 ‘하나’는 ‘발레’를 하며 그 고통에 대한 기억으로 구두를 신지 못합니다. 그리고 엄마의 대리만족을 위해 자신이 성장했음을 깨닫습니다. 엄마의 ‘너를 위해서’라는 말은 결국 엄마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누 301’은 결국 그들과 한 가족이 되지 않겠다고 결정합니다.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심리를 보며 그가 결정한 것은 스무 살까지 센터에서 산 후 독립하는 것입니다. ‘제누 301’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으며 마음 역시 단단합니다. 청소년이지만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밝게 만들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줍니다. 이 책은 청소년 도서지만 부모들이 읽으면 더 좋은 책입니다. 자녀에게 매우 권위적이며 동시에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부모인 ‘괴물 부모’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요즘, 자녀와 부모의 긍정적인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사랑’과 ‘독립’이 공존할 수 있게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청소년 도서 추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소년 도서 추천┃ 김혜정『오백 년째 열다섯』 (102) | 2024.01.24 |
---|---|
청소년 도서 추천┃ 유은실『순례주택』 (114) | 2024.01.22 |
청소년 도서 추천┃이희영『나나』 (131) | 2024.01.20 |
청소년 도서 추천┃ 김선영『시간을 파는 상점』 (125) | 2024.01.19 |
청소년 도서 추천┃ 황영미『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 (62) | 2024.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