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리의 가족
문경민의 <훌훌>은 ‘제 12회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훌훌’이란 날짐승 따위가 잇따라 날개를 치며 가볍게 나는 모양 또는 눈이나 종이, 털 따위가 가볍게 날리는 모양을 뜻하는 부사어입니다. 가볍게 움직이는 모양이지만 단어가 주는 뉘앙스는 삶의 짐을 훌훌 벗어 버리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여러분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는 무엇인가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서유리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대학 진학을 고민하는 그녀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조손가정의 아이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유리네는 부모님이 안 계시지만 할아버지의 보살핌을 받고 있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학생과 별 차이가 없는 가족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유리는 서정희 씨에게 입양되었습니다. 어느 해 겨울날 입양 관련 동화책을 읽어주며 너는 내가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고 입양 사실에 대해 유리에게 설명한 엄마 서정희. 그녀는 여덟 살의 유리를 할아버지에게 맡겨 놓고 더 이상 아이를 돌보지 않고 집을 떠납니다. 엄마의 보살핌을 받아본 적이 없이 소외감과 억울함, 서러움을 느끼며 성장한 유리는 할아버지와 서로 암묵적인 규칙을 만들어 서로의 삶에 깊게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리는 엄마가 죽었다는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습니다.
2. 동생 연우
술에 취한 엄마는 운이 나빠서 돌투성이 마른 개천 바닥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엄마가 죽고 동생 연우가 유리네 집에 옵니다. 할아버지는 체크카드에 돈을 넣어 두었다고 하며 일주일간 여행을 다녀온다고 말합니다. 졸지에 동생을 혼자 돌보게 된 누나 유리는 연우를 초등학교에 데려다 주고 학교에 갑니다. 그러나 오후에 연우네 학교에서 전화가 옵니다. 유리는 연우가 교구 창고 뒤편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가 발견되어 경찰에 신고될 뻔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말도 하지 않고 전입 통지서를 내민 연우는 3교시 이후에 4학년 2반으로 배정됩니다. 양말도 신지 않고 말도 안 하는 동생을 데리고 집에 온 유리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경찰의 방문을 받습니다. 엄마의 죽음과 관련한 CCTV에서 엄마에게 맞는 연우의 모습과 다리 위에서 엄마를 밀치는 연우의 모습에 대해 발견하고 조사 차원에서 가정 방문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유리는 연우의 몸에서 오랜 세월 아동 학대를 당한 흔적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연우가 4학년이 되도록 젓가락도 제대로 못 쥐고 글씨도 제대로 못 쓰는 모습을 보고 엄마 서정희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3. 친구 세윤
친구 미희, 주봉, 세윤과 동아리를 구성하게 된 유리는 세윤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압니다. 세윤과 대화 도중 ‘우리’라는 말, 유리가 유명하다는 말을 통해 유리는 자신의 출생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대학교에 들어가 이 집과 영영 이별하고 싶었고, 그 이후 친부모를 찾으려 했던 유리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자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집안에서 낡은 상자를 발견한 유리는 그 속에서 아기옷과 ‘이수빈’이라는 이름을 발견합니다. 세윤으로부터 입양아 특별방송에서 자신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리는 할아버지로부터 그 사연을 듣습니다. 부모님이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닌 교통사고로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고, 서정희 엄마의 남편와 딸 ‘이수빈’도 그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서정희씨는 어린 연우가 딸처럼 느껴져 입양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를 키우면서 그 삶의 무게에 짓눌려 술을 마시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망치는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4. ‘훌훌’ 날아보자
할아버지는 연우의 아버지를 찾아오나 그는 자신만의 온전한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연우를 키우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유리는 오히려 그 집에 안 가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년보호재판에서 서정희 씨의 죽음이 사고로 결론지어져 연우는 별다른 조치를 받지 않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유리는 할아버지가 3차 항암치료를 받고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어 할아버지의 수술 결과를 들으러 갑니다. 유리는 말합니다. “잘됐을 거야. 아주아주 잘됐을 거야.”
유리의 삶은 ‘입양, 엄마로부터 외면, 피가 섞이지 않은 어린 동생, 할아버지의 건강 악화’ 등 악조건으로 이루어져 상상하기조차 하기 어려운 힘듦이 느껴집니다. 유리는 담임선생님께 죽을 만큼 힘들었던 적이 있었냐고 물어봅니다. 선생님은 있었다고 대답하며 살아온 길이 저마다 다르니까 함부로 판단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훌훌’이란 소설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유리는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자기의 뿌리를 찾고 피가 섞이지 않은 연우와 할아버지를 한 가족으로 잘 돌보려는 의지를 보입니다. 유리를 둘러싼 삶의 짐들을 훌훌 떨쳐버리고 또다른 마음가짐으로 새롭게 삶을 훌훌 시작하려는 유리의 모습은 성장하는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줍니다.
아울러 작가는 또 다른 입양 아이인 세윤을 통해 입양가족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선입견과 편견으로 입양된 아이를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엄마와 자녀 사이에서 갈등도 느끼고, 화해도 하며 일상생활을 하는 세윤의 모습을 통해 유리도 자기의 출생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 지금’, 나를 둘러싼 수많은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걱정하고 고민합니다.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유리처럼 희망을 품고 당당하게 마주할 것인가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유리가 가진 단단한 마음, 그리고 수많은 갈등에도 나아가야할 방향을 찾을 수 있는 의지가 있다면 우리 역시 유리처럼 훌훌 날 수 있을 것입니다.
훌훌 날게 될 여러분의 오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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